저는 평생을 노동자로 살아왔습니다. 다시 말하면 열심히 일하면서 평범하게 살아왔습니다.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이 일을 합니다. 일하는 사람을 노동자라고 합니다. 우리는 일하지 않는 사람을 ‘한량’이라 부르고 ‘건달’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일하지 않는 사람을 문제나 말썽꾼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일하지 않는 ‘지주’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노조의 일을 맡게 되면서 혹 저를 빨갱이라 말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노조는 노동자들의 모임일 뿐입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조기축구’를 구성하고, 요즘처럼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러닝 크루’를 만들기도 합니다. 농사를 짓던 우리는 서로를 도와야 했습니다. 모내기와 추수를 혼자 하기란 너무 힘이 듭니다. 서로 품앗이해야 했고 계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온 방법이었습니다. 이 계는 나라가 위급할 때는 동학의 이름으로 외세와 싸웠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의 수탈에 저항했습니다. 일제 수탈에 저항한 조직이 우리나라 최초의 노조입니다. 노조는 헌법상의 권리입니다. 약자들이 함께 살기 위한 계의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그러나 보수 정권과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언론사는 노조를 빨갱이 폭력
뉴라이트 대표주자 이영훈이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는 인물이 바로 세종대왕이다. 그는 세종 시절에 노비가 늘었고, 기생제를 확대했으며, 사대주의가 강화되었다고 주장하며 세종대왕을 지금에 와서도 성군으로 추앙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 억지를 부린다. 그가 세종대왕까지 깎아내리는 이유는 조선과 조선인이 스스로 근대성을 획득할 수 없는 구제 불능한 존재이며, 일제를 통해 근대화되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위한 것이다. 저들의 과거 훈민정음이 문창살을 모방했다는 식의 터무니 없는 주장은 사라졌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창제 원리가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이다. 즉 자음은 숨의 원리에 따라 발음 기관 또는 발음하는 모양을 본떠 만들었고, 모음은 숨기운의 바탕인 천지자연의 우주를 담아 하늘과 땅과 사람을 본떴다. 자음은 발음기관 어딘가에 닿으면서 나오기 때문에 닿는 곳의 모양이나 상태를 본떠 만들었다. 그 후에도 저들은 고대 문자를 베꼈고 결정적인 조력자가 있었다는 주장은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이른바 훈민정음 모방-공동 창제론이다. 훈민정음 모방-공동 창제론의 기본 구조는 세종대왕의 능력을 폄하하고 훈민정음을 유목 민족이 가졌던 여러 표음 문자의 아류 정도로 치부하려는 생각
우리나라의 국방 현실에 대해 이렇게 국민의 걱정과 근심이 큰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나라, 특히 선진국의 국방부 장관은 민간이 맡습니다. 군에 대한 혁신 개선 방법은 외부의 시선으로 객관적으로 평가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군은 민간 즉 정부의 지휘를 받는 것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독재국가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남북 간의 긴장이 큰 휴전 국가이기에 예외적으로 군 출신이 국방부 장관을 수행합니다. 이는 거꾸로 군의 현실적 상황을 정부 정책에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지금 군의 현실이 정부 정책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해 걱정이 커지고 있습니다. 우선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북에서 오물 풍선을 수시로 띄우고 있으며, 정부는 수시로 긴급 문자를 발송해 긴장감을 더합니다. 오물 풍선은 용산 대통령실뿐만 아니라 수도권 곳곳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풍선이 오물이 아니라 생화학 무기가 담기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냐?”며 군과 정부의 무능을 질책하고 있습니다. 이는 타당한 질책입니다. 최선은 북이 오물 풍선 도발을 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관리하는 것이며, 차선은 풍선이 민간인 구역에
한국노총 경기중북부지부 노동자 한 명 한 명이 정성을 모으고 모아서 시민언론 ‘들꽃’을 시작합니다. 대한민국의 언론은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을 평범한 사람이 아닌 극렬 과격하고 파괴적이며 힘센 악마처럼 묘사합니다. 노조를 공산당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조합원들은 오늘 여러분이 아침에 인사를 나눈 버스 운전사이며, 우유를 나르는 아주머니이며, 구청에서 만난 친절한 공무원입니다. 노조원은 그저 땀 흘리며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의 이웃입니다. 노조원의 평범함은 노조의 상식적인 활동으로 나타납니다. 모여서 축구하고, 곗돈을 모으고, 부조를 하며, 불우이웃 돕기를 합니다. 그러나 이 땅이 보수 언론은 많은 경우 사실을 왜곡합니다. 노조를 악마화하고 적대시합니다. 왜곡된 보도는 진상이 드러나도 사과조차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진실을 말하는 참된 언론을 기다려 왔습니다. 진실을 말하는 언론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눈을 들어 옆을 살펴보면, 시민 사회에는 이웃을 위해, 진실을 위해 일어서고 싸우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우리 약자들의 힘은 연대로부터 나옵니다.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