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이 땅의 기독교는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급성장을 했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으며, 당시 일부 선교사들이 독립운동가를 지원한 것, 선교 초기 다른 종교와 충돌 없었던 것이 한국교회 부흥의 원인이었다. 6·25 전쟁 중 남하한 기독교인은 반공 세력이 되었다. 이들이 비극의 시작이 되었다. 이들이 한국교회의 주류가 되었기 때문이다. 전후 미국과 미군의 역할이 중요해 짐으로 그 교두보가 되는 교회의 인기는 치솟기 시작했다. 산업화 이후 시골을 떠나 서울 등 대도시에 정착한 그들에게 커뮤니티를 제공한 것이 교회였다. 이때 한국교회는 급 성장을 하게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물질적 가치의 사이비 세력의 분파였던 일부 교회가 정식 교단으로 인정받았고, 교회의 관심은 점차 물질적 축복을 중요시하게 됐다. 반공 가치의 보수적 교회와 사이비 기초의 교회는 독재정권을 인정하고, 공산주의를 배격하며 서로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하게된다. 그러나 보수화된 한국교회는 초기 교회와 달리 타 종교와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사찰에 십자가 테러를 저지르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사회의 약자들을 저주하고 갈라치기 시작했다. 노조와 성소수자, 무슬림을 악마화했다
12․3 내란 사태로 촉발된 대한민국 보수세력의 몰락은 결국 대선을 앞둔 국민의힘 몰락으로 모든 실체가 드러났다. 6․25 전쟁이 마무리되지 못하고 휴전으로 이어지면서 한반도에는 수구세력이 정착되었다. 남한에는 군부독재가 이어졌고, 이들에게 부역했던 언론과 재벌, 검찰과 법원 그리고 기독교 등의 종교 세력이 보수 카르텔을 만들어왔다. 이들은 부와 권력을 세습하며 기득권을 강화했다. 그러나 2024년 12․3 내란 사태로 그 실체를 들켰다. 그리고 그들의 총합인 국민의힘은 이제 마지막 기회인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사분오열로 폭망의 길로 들어섰다. 국민의힘은 대통령 후보로 누구를 공천해도, 이미 계파별로 조각조각 부서진 당 조직은 지역에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 것이다. 남북한이 갈라져 보수에게 절대로 유리한 지형인 이 땅에서 어쩌다가 보수는 이처럼 망하게 되었을까? 보수를 바라보는 국민은 알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듯하다. 이는 마치 재래식 화장실 안에 있는 사람은 그 악취를 모르고 밖의 사람들이 냄새를 아는 것과 같은 모양이다. 이에 보수 폭망의 원인을 보수주의자들에게 설명을 해보자 한다. 마르크스는 ‘토대가 상부구조를 구축한다.’라고
‘대한민국 사법부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있을까?’ 최근 내란 수괴 윤석열에 대한 석방과 온갖 특혜와 반대로 이재명 후보에 대한 전례 없는 빠른 재판절차와 불공정한 결과를 보며 국민 대다수가 갖는 의문이다. 대부분의 순박한 국민은 자신을 지켜줄 최후의 보루로 사법기관을 믿어왔다. 그러나 더 이상 대한민국의 사법기관을 신뢰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사법부는 뿌리부터 친일적이다. 1905년 을사늑약에 서명한 을사오적이 모두 판사 출신이었다. 학부대신 이완용은 평남과 전북재판소 판사, 외부대신 박제순은 평리원 재판장서리, 군부대신 이근택은 평리원 재판장, 내부대신 이지용은 평리원 재판장과 법부대신,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은 평리원 재판장 서리 출신이다. 을사오적은 병탄 뒤 일제로부터 높은 작위와 막대한 은사금을 받고 그들의 후예와 추종자들은 일제강점기 기득권층이 되었다. 해방 후 사법부 수장을 비롯해 판검사와 변호사 중에는 친일 부역자가 너무 많았다. 친일인명사전에는 판·검사 출신 184명이 등재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고재호, 김동현 등 역대 대법관 15명도 포함된다. 친일 판사들은 단순히 소극적인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일제 식민지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
윤석열의 농성이 길어지고 있다. 탄핵 후 정정당당하게 정치적 사법적 책임을 지겠다는 다짐은 사라졌다. 당시 다짐과는 달리 공수처의 소환조사에도 불응하고 있으며, 법원의 체포영장도 무시하고, 이제는 무장 저항을 지시하고 있다. 참으로 상식적이지 않다. 박근혜 탄핵 당시 헌법재판소는 ‘박근혜가 당시 사법기관의 비협조적이었다’라는 근거로 ‘헌법수호 의지가 없다’라고 판결했다. 이는 탄핵의 중요한 사유가 됐다. 당시 검사였던 윤석열이 이 사실을 모를 수 없다. 그럼에도 지금 윤석열은 무장 농성을 지시하고 있다. 만약의 경우 총기사고라도 발생한다면, 윤석열의 책임은 이전과는 전혀 달라진다. 이는 오히려 윤석열의 탄핵을 빠르게 앞당기는 결정적 방아쇠가 될 것이다. 이런 무모함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아전인수격 확증편향과 특히 ‘무속’으로 설명된다. 윤석열과 김건희가 지금 기대는 것은 ‘을사년 즉 2025년에 대운이 올 것’이라는 기복적 믿음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오랫동안 2025년도에 통일이 될 것이며, 여성 대통령이 나온다는 정감록 등의 예언을 믿어왔다고 전해 진다. 때문에 설날까지, 늦어도 입춘까지 버티면 상황이 반전되리라 믿는다는 것이다. 이들의 2025
불과 몇 년 전 전 세계의 ‘코로나 펜데믹’에서도 세계 최고의 경제 성과를 보였던 우리나라가 왜 이렇게 됐을까? 무엇보다도 최고 책임자의 무능이 문제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경제는 대통령이 책임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를 대통령에 뽑았다. 그는 친일적 뉴라이트 사관의 인사들을 용산과 정부에 배치하더니 외교나 경제에 관한 결정을 국익이 아닌 미국과 일본의 이익을 위한 결정을 해왔으며, 내부적으로는 대기업과 종부세 대상자만을 위한 정책을 시행한 결과였다.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형 기업은 국내가 아니라 미국에 세워지게 되었으며, 이 기업에 대한 혜택 약속도 트럼프 집권으로 사라지게 되었으며, 대 중국 단절은 중국무역의 적자와 일본의 경제 성장으로 이어졌다. 지금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률은 30년 불황을 이야기하는 일본만도 못한 상황이 되었다. 10만 전자를 이야기했던 삼성전자는 한때 4만 전자, 지금은 5만 전자가 위태롭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무엇보다 무능한 최고 책임자를 뽑은 잘못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람의 가치를 무시한다. 사람을 능력이 아니라 비용으로 보고, 사람됨을 무시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일본의 미즈호 은행의 부실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많은 국민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그러나 이에 불만을 표하거나 애써 그 의미를 폄훼하는 이들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작가이며 현재 조선일보에 연재 중인 김규나다. 그 외 일부 보수 커뮤니티에서도 발악하고 있다. 그들은 때마침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일본의 시민단체를 함께 거론하며 한일 간 우호의 기회로 삼자는 주장을 한다. 이는 전형적인 일본 우익의 주장으로 이를 함께한다. 그들의 한강에 대한 폄하는 비웃음을 사는 지경으로 한강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의 배경 사건인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오 싯팔’이라 부르며 역사 왜곡이라 주장한다. 제주 4·3 사건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출판사의 로비로 수상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많은 사람에게 ‘그럼 조선일보가 로비를 해보지 그랬냐?’라는 비웃음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보수 우익 작가들이 국제적인 상을 받지 못함을 분개한다. 보수 우익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작가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이문열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