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시민 여러분께 호소드립니다. 우리는 지금 이 대선을 왜 치러야 하는지 기억해 주십시오. 이 선거는 계엄을 저지른 윤석열이 탄핵당했기 때문에 치르는 선거입니다. 12월 3일 내란이 시작됐을 때, 많은 사람이 공포에 떨었습니다.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할 때 사람들은 눈을 의심했습니다. 계엄은 사실상 나라의 모든 일들이 군대에 의해 총칼로 다스려지는 나라를 의미합니다. 윤석열은 국민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리고 군은 국회로 쳐들어갔습니다. 독재자의 본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 장면을 바라보는 많은 국민이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가장 먼저 국회로 달려가며, 의원들을 소집했으며, 유튜브 방송으로 시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수많은 시민이, 청년들이, 그리고 어르신들이 국회로 달려갔습니다. 누구는 한겨울 슬리퍼 차림으로, 옷도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고 국회로 달려갔습니다. 수많은 시민은 죽음을 각오하고 국회로 달려갔고, 맨몸으로 군과 경찰에 맞섰습니다. 그리고 멀리 있어 달려가지 못하고 그 장면을 유튜브로 바라봐야 했던 우리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뜬 눈으로 그 장면을 바라봤습니다. 종교인은 기도
전후 이 땅의 기독교는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급성장을 했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으며, 당시 일부 선교사들이 독립운동가를 지원한 것, 선교 초기 다른 종교와 충돌 없었던 것이 한국교회 부흥의 원인이었다. 6·25 전쟁 중 남하한 기독교인은 반공 세력이 되었다. 이들이 비극의 시작이 되었다. 이들이 한국교회의 주류가 되었기 때문이다. 전후 미국과 미군의 역할이 중요해 짐으로 그 교두보가 되는 교회의 인기는 치솟기 시작했다. 산업화 이후 시골을 떠나 서울 등 대도시에 정착한 그들에게 커뮤니티를 제공한 것이 교회였다. 이때 한국교회는 급 성장을 하게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물질적 가치의 사이비 세력의 분파였던 일부 교회가 정식 교단으로 인정받았고, 교회의 관심은 점차 물질적 축복을 중요시하게 됐다. 반공 가치의 보수적 교회와 사이비 기초의 교회는 독재정권을 인정하고, 공산주의를 배격하며 서로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하게된다. 그러나 보수화된 한국교회는 초기 교회와 달리 타 종교와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사찰에 십자가 테러를 저지르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사회의 약자들을 저주하고 갈라치기 시작했다. 노조와 성소수자, 무슬림을 악마화했다
12․3 내란 사태로 촉발된 대한민국 보수세력의 몰락은 결국 대선을 앞둔 국민의힘 몰락으로 모든 실체가 드러났다. 6․25 전쟁이 마무리되지 못하고 휴전으로 이어지면서 한반도에는 수구세력이 정착되었다. 남한에는 군부독재가 이어졌고, 이들에게 부역했던 언론과 재벌, 검찰과 법원 그리고 기독교 등의 종교 세력이 보수 카르텔을 만들어왔다. 이들은 부와 권력을 세습하며 기득권을 강화했다. 그러나 2024년 12․3 내란 사태로 그 실체를 들켰다. 그리고 그들의 총합인 국민의힘은 이제 마지막 기회인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사분오열로 폭망의 길로 들어섰다. 국민의힘은 대통령 후보로 누구를 공천해도, 이미 계파별로 조각조각 부서진 당 조직은 지역에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 것이다. 남북한이 갈라져 보수에게 절대로 유리한 지형인 이 땅에서 어쩌다가 보수는 이처럼 망하게 되었을까? 보수를 바라보는 국민은 알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듯하다. 이는 마치 재래식 화장실 안에 있는 사람은 그 악취를 모르고 밖의 사람들이 냄새를 아는 것과 같은 모양이다. 이에 보수 폭망의 원인을 보수주의자들에게 설명을 해보자 한다. 마르크스는 ‘토대가 상부구조를 구축한다.’라고
‘대한민국 사법부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있을까?’ 최근 내란 수괴 윤석열에 대한 석방과 온갖 특혜와 반대로 이재명 후보에 대한 전례 없는 빠른 재판절차와 불공정한 결과를 보며 국민 대다수가 갖는 의문이다. 대부분의 순박한 국민은 자신을 지켜줄 최후의 보루로 사법기관을 믿어왔다. 그러나 더 이상 대한민국의 사법기관을 신뢰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사법부는 뿌리부터 친일적이다. 1905년 을사늑약에 서명한 을사오적이 모두 판사 출신이었다. 학부대신 이완용은 평남과 전북재판소 판사, 외부대신 박제순은 평리원 재판장서리, 군부대신 이근택은 평리원 재판장, 내부대신 이지용은 평리원 재판장과 법부대신,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은 평리원 재판장 서리 출신이다. 을사오적은 병탄 뒤 일제로부터 높은 작위와 막대한 은사금을 받고 그들의 후예와 추종자들은 일제강점기 기득권층이 되었다. 해방 후 사법부 수장을 비롯해 판검사와 변호사 중에는 친일 부역자가 너무 많았다. 친일인명사전에는 판·검사 출신 184명이 등재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고재호, 김동현 등 역대 대법관 15명도 포함된다. 친일 판사들은 단순히 소극적인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일제 식민지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
이른바 58년 개띠는 베이비붐 세대입니다. 6·25 전쟁 후 태어난 세대로 갖은 고생을 했으며, 아날로그 시대와 산업화 시대를 살아왔으며, 이제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사람은 과거의 방식대로 사는 것이 익숙합니다. 때문에, 저도 막걸리와 털래기(천렵)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과거 땅에 투자하는 것이 돈을 버는 최고의 방법이었던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최고의 투자는 부동산’이라 여기며 산 세대입니다. 그러나 과거 아날로그 세상이 디지털 세상으로 변한 것처럼, 부동산이 최고의 가치였던 시대가 저물고 있습니다. 이미 포천뿐만 아니라 서울의 중심가에도 빈 상가와 점포가 크게 늘고 있습니다. 보도 되지 않지만, 최근에는 부동산 투자의 최후 보루였던 강남의 아파트 가격도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때문에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우리에게도 온 것이 아니냐?’라는 사회적 공포가 커지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부동산 침체의 가장 큰 이유는 인구가 아주 빠르게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70년생이 100만 명이었지만 요즘 세대는 25명만이 되지 않습니다. 인구가 4분의 1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앞으로가 더 걱정입니다. 또한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윤석열의 농성이 길어지고 있다. 탄핵 후 정정당당하게 정치적 사법적 책임을 지겠다는 다짐은 사라졌다. 당시 다짐과는 달리 공수처의 소환조사에도 불응하고 있으며, 법원의 체포영장도 무시하고, 이제는 무장 저항을 지시하고 있다. 참으로 상식적이지 않다. 박근혜 탄핵 당시 헌법재판소는 ‘박근혜가 당시 사법기관의 비협조적이었다’라는 근거로 ‘헌법수호 의지가 없다’라고 판결했다. 이는 탄핵의 중요한 사유가 됐다. 당시 검사였던 윤석열이 이 사실을 모를 수 없다. 그럼에도 지금 윤석열은 무장 농성을 지시하고 있다. 만약의 경우 총기사고라도 발생한다면, 윤석열의 책임은 이전과는 전혀 달라진다. 이는 오히려 윤석열의 탄핵을 빠르게 앞당기는 결정적 방아쇠가 될 것이다. 이런 무모함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아전인수격 확증편향과 특히 ‘무속’으로 설명된다. 윤석열과 김건희가 지금 기대는 것은 ‘을사년 즉 2025년에 대운이 올 것’이라는 기복적 믿음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오랫동안 2025년도에 통일이 될 것이며, 여성 대통령이 나온다는 정감록 등의 예언을 믿어왔다고 전해 진다. 때문에 설날까지, 늦어도 입춘까지 버티면 상황이 반전되리라 믿는다는 것이다. 이들의 2025